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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책

구병모 『파과』

by 생각과기록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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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 소감

재미있다. 흡입력이 있다. 60대 여성 킬러가 살아온 삶의 과정 속에서 처절하게 참고 견뎌내 온, 누르고 누르며 '이건 내 마음이 아니다'며 거부했던 그 미온의  따뜻함을 위해 마지막 목숨을 거는 이야기. 몰입하고 집중하며 감동하며 읽었다.   

 

구병모라는 작가가 여성인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섬세함과 더불어 싸움 장면에서의 거칠고 절묘한 묘사력을 보며 당연히 남자 작가가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호흡이 길었다. 문장이 길었다. 긴 호흡과 긴 문장이었지만 어색하지도, 읽기 힘들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짧게 쓰는 글이 잘 쓰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긴 호흡의 글이라도 작가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멋진 글로 탄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님은 가급적 글을 길게 쓰라고 했다. 머리 뚜껑 속 생각이 깊어지고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르는 어휘가 많았다. 이렇게 다양한 단어가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휘, 단어를 모르는데도, 그냥 그 언어들이 작가의 문장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르는 어휘가 문장에서 빛이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구병모 작가의 취미생활이 국어사전을 보는 일이라고 했다.)

 

생각은 언어만큼 깊어진다. 많은 어휘가 글쓰기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많이 읽고 많이 알아야하고, 많이 써봐야 한다. 그래야 글이 좋아진다. 

 

파과 - 추천문장

"혀에 감긴 귤 알맹이가 부서지자, 입안이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감각으로 채워지고, 세르토닌이 한껏 상승한 상태에서 조모와 손녀를 바라보니,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스럽다.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 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건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갓 쪄낸 떡처럼 따뜻하고 말랑한 가정을 다만 곁눈질로 부러워함으로써"

 

조각은 강박사의 가족들을 이렇게 바라봤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한없이 그립고 부러워했다. 

 

어제 아들 둘과 아내와 함께 골뱅이를 까먹었다. 손가락이 아픈 큰 아들은 골뱅이를  까주라고 했고, 골뱅이를 까주고 입에 넣어주자 오물조물 맛있게 먹는다. 

 

둘째 아들에게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아줬다. 제법 잘 탄다.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달린다. 

 

아내와 막걸리를 한잔 함께 들이킨다. 

 

우리가 살아내는 평온한 모습이 당연한 모습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당연함은 누군가에게  큰 그리움이자 소중함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파과 - 질문!

작가는 냉장고 속, 갈색의 시든 복숭아를 보며 이 글을 구상했다고 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밝은 분홍빛의 복숭아. 그러나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그저 갈색 빛 덩어리!

 

60대 여성 킬러 조각은 마지막 투우와 싸움을 끝내고 손톱을 꾸민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던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과거의 한 지점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살아내는 현재일까?"  아니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일까?" 

 

빛났던 순간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행복할까? 빛날 순간을 기약하며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지금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임을 믿고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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