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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책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함께 읽기

by 생각과기록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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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1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인간이 원래 철두철미하게 물질주의적이어서 이기적이고 실리적이며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라면, 공감-엔트로피의 역설을 해결할 가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근본적으로 정에 민감하고 우애를 갈망하고, 사교적이며, 공감을 넓히려는 성향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적어도 우리는 공감-엔트로피의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내어 생물권에서 지속 가능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P55)

◆ 발췌
우리가 다른 존재에 공감하게 되면,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매우 허약한 존재이며, 쉬지 않고 그들 몸을 관통해 흐르는 에너지 덕분에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절로 이해할 수 있다.  (P53) 다른 사람도 유한한 생명을 갖고 잘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공감 인식은 비로소 엔트로피의 인식에 가 닿는다. 다른 사람의 곤란한 처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공감하고 지지해 주려는 것은 바로 그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다. 열역학 법칙, 특히 엔트로피 법칙은 살아 있는 매 순간이 유일한 것이며, 반복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갈 뿐 젊어질 수는 없다.  (P53)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결합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방정식을 바꾸어 왔다. (P47) 사람 한 명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1년에 송어 300마리가 필요하다. 300마리의 송어는 9만 마리의 개구리를 먹어야 한다. 그리고 개구리는 2700만 마리의 메뚜기를. 그리고 메뚜기는 1,000톤의 풀을 먹고 산다. (P43) 소속되려는 충동은 여전히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성이다. (P30)

◆ 단상
인간이 공감할수록, 사회적으로 공감의 영역을 키워갈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존재의 절멸과 대면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공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해결책도 존재할 것이다.  공감력이 부족한 내게 공감력을 키워줄 수 있는 책일 것이라고 믿으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 책은 ‘공감’ 의 과거와 역사, 그리고 우리 인류의 미래를 진단해보고, 무분별한 엔트로피의 증가를 막을 방법을 제언해주는 책일듯하다. 책을 덮을 때 내 생각의 그릇이 더욱 깊고 커져있길 기대한다.
 

공감의 시대 - 2일차 

 
◆ 오늘의 한 문장
당신이 어떤 관계에 있다면 그 관계는 당신의 일부이다. (p97)
 
◆ 발췌
멜라니 클라인은 에고는 태어나서부터 원시적인 형태로 활동하면서 유아에게 내면화된 대상관계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준다고 한 점이다. 어떤 형태의 의식이 초기부터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클라인은 아기가 처음으로 내면화한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라고 말했다. (p71) 리비도의 태도가 대상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관계가 리비도의 태도를 결정한다. (p72) 페어베언. 리비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p73) 이 아이들은 3년동안 수용소에서 지내면서 엄마가 계속 바뀌는 불운을 겪었다. 한 엄마가 죽으면 다른 엄마가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을 키웠다. 당연히 그 때마다 적지 않은 혼란을 느꼈겠지만, 그대로 아이들은 꽤나 정상적인 응집적 자아를 갖출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을 돌봐주었던 엄마들이 하나같이 충분한 공감적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p77) 엄마는 아기와 갖는 최초의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을 통해 아기가 하나의 개인적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처음부터 관계가 개인을 만든다. (p79) 다정함을 성적 각성이 미약한 형태로 승화된 것이라고 여겼던 프로이트와 달리 수티는 다정함을 날 때부터 스스로를 표현하는 근원적 힘이라고 보았다. (p81) 초기에 엄마라는 인물과 결합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겉으로는 다정해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감정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p83) 세균 감염이나 질병확산을 두려워해서 아기를 만지거나 들어올리거나 껴안는 일을 삼갔다. 직원들은 신체적 접촉을 피하기 위해 아기 바구니에 설치된 관을 통해 우유를 먹였다. 아이들은 맥을 못 추었다. 충격적이지만 두 살이 될 때까지 일부 고아원의 사망률은 32퍼센트에서 75퍼센트로 기록되었다. 청결한 환경에서 잘 먹이고 잘 키우는데도 아기들은 잇달아 죽어 갔다. (p84) 없으면 찾고, 없어지면 걱정하고 당황한다. 다시 찾으면 안도하고 행복해한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아이의 이후 정서적 생활이 만들어진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앞으로 아이의 행복과 건강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p88) 보울비는 애착과 독립 사이에 존재하는 변증법적 관계를 찾아냈다. 아주 좋은 부모는 아이에게 안정적인 기지를 마련해주고 아이가 그 기지를 거점 삼아 마음껏 세상을 탐구할 수 있게 격려한다. (p90) 부모가 아이를 정성껏 돌보고 감싸 주고 정을 표현하고 안정감을 주면, 아이는 세상에 뛰어들어 독립적인 존재로 자란다. 하지만 부모는 동시에 아이의 탐구심과 주변 세상에 참여하려는 타고난 욕망을 한껏 부추길 필요가 있다. 이런 변증법적 과정의 성패 여부가 훗날 아이의 정서적 생활과 사회성을 결정한다. (p90)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줄 수 있을까? 공감은 가르치거나 훈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공감해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이가 관계를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이가 어떤 관계를 경험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p97)
 
◆ 단상
프로이트의 시대, 프로이트의 정신을 따른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던 것일까? 불과 90년 전의 일이다.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자.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애정을 표현해주자. 안정한 기지를 선물해주자.
 

공감의 시대 - 3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인간에게 놀이는 인성 발달의 결정적 요인이다. (116)
 
◆ 발췌
거울신경세포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몇몇 동물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거울신경세포를 공감뉴런으로 바꿔부르기도 했다. (102) 공감은 내재되어 있으며, 공감이 우리의 본성이고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104) 유아에 대한 부모와 사회의 양육과 교육은 거울신경세포의 회로를 활성화시키고 두뇌의 공감적 경로를 수립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 요소다. (106) 다윈은 이렇게 썼다. 말, 개, 양이 무리와 떨어질 때 얼마나 슬퍼하는지, 그리고 무리와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끈끈한 애정을 표현하는지 알아야 한다. (112) 고등동물에게도 대부분 우리와 공통되는 복잡한 감정이 들어 있으며 동물도 사랑할 줄 알 뿐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 한다. (112) 종의 기원에서 분명히 밝힌 적자생존이라는 다윈의 이론이 당시의 이기적이고 실용적인 윤리에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년의 저술에서 다윈은 존 스튜어트 밀을 위시한 당대 공리주의 사상가들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충동이 항상 예상된 쾌락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114) 다윈은 그런 행동은 쾌락을 위한 충동보다는 더 깊은 곳에 뿌리 박고 있는 인간의 충동, 즉 사회적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115) 불에 뛰어드는 사람은 불에 갇힌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도우려 덤벼든다. 이것이 다윈이 말하는 사회적 본능이다. (115) 인간에게 놀이는 인성 발달의 결정적 요인이다. (116) 우선 놀이는 본질적으로 철저히 참여적이다. 놀이는 다른 사람과 무언가에 몰두하는 행동이다. 놀이는 혼자만의 쾌락이기보다 하나의 공유된 즐거움이다. 순수한 놀이는 수단이기보다는 본질적 의미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다. (117) 화해는 주로 사회적 조화를 되찾으려는 욕구와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드 발 박사는 지적한다. 반면에 위로는 다른 의도 없이 순전히 공감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 행동으로, 단지 상대방의 곤경을 인정하고 달래기 위한 것이다. (123) 유아 발달의 전 단계에서 보다 복잡한 몸짓을 활용하는 의사소통의 유형은 거울 뉴런을 자극하고 보다 정교한 공간회로를 만들어 가장 복잡한 형태의 공감적 커뮤니케이션, 즉 언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128) 언어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 능력의 형성은 공감의 크기와 범위가 확장되고 문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몸짓으로 하는 의사소통 방식이 갈수록 복잡해져 가는 과정의 최종 단계이다. (128)
 
◆ 단상
얼마 전 직장 동료 후배가 아내와 중학생 아들이 싸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학생 아들은 축구를 좋아해서 매일 밖으로 나가 축구를 친구들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엄마는 공부하지 않고 밖으로만 나도는 아들이 걱정된다. 아들과 엄마는 싸웠고, 엄마는 아들에게 일정시간 책상에 앉아 있지 않으면 외출금지를 내리겠다고 했다. 아들은 문을 쾅 닫고 씩씩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후배 아내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공감하는 어른으로 잘 성장하는데 결정적 역할은 부모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공감의 시대 - 4일차

◆ 오늘의 한 문장
모욕을 당하면 내면의 공감 스위치가 꺼진다. 따돌림을 당해 존재감을 못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곤경 앞에서 공감의 수문을 열 수 없다. 다른 사람과 정서적인 유대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은 위축되어 뒷걸음질치게 된다. 버려졌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된다. 왜 화를 낼까? 화를 내는 것만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고립되고 동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외톨이는 어느 집단에서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49)
 
◆ 발췌
일상에서 반사회적인 행동보다는 친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로 성장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애정을 주고 서로 배려하는 능력이 있고, 혼자 외톨이가 되거나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131)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정서 상태를 자신의 정서적 경험에 비추어 볼 뿐 아니라 그것을 내면화함으로써 보다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142) 아이에게 잠재되어 있는 공감 능력을 일깨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추리를 유도하는 것이다. 가령 아이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빼앗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앉혀 놓고 네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 아이의 기분은 지금 어떨까 하고 물어보면 된다. (146) 각본화된 모든 기억은 아이의 공감적 경험의 목록을 늘려 주어 장차 사회적 만남에서 꺼내 쓸 수 있는 경험의 도서관이 된다. (147) 죄책감은 공감적 고통과 자신이 괴롭힌 사람에게 손을 뻗어 상황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수치심은 모욕감을 느끼게 만들어 쓸모없고 사람 축에도 못 드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모욕당했다는 것은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149) 모욕을 당하면 내면의 공감 스위치가 꺼진다. 따돌림을 당해 존재감을 못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곤경 앞에서 공감의 수문을 열 수 없다. 다른 사람과 정서적인 유대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은 위축되어 뒷걸음질치게 된다. 버려졌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된다. 왜 화를 낼까? 화를 내는 것만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고립되고 동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외톨이는 어느 집단에서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49) 죄책감을 느끼게 하여 사태를 바로잡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인간성이 있기 때문이다. 모욕감을 주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빼앗는 행위지만, 죄책감은 다른 사람과 깊이 맺어진 유대감을 상기시켜 사회적 결합을 회복할 필요를 느끼게 만드는 내면의 메커니즘이다. (149) 상대방의 기분을 설명해주고 입장이 바뀌었을 때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부모는 아이가 갖고 있는 착한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사태를 만회하려는 욕구를 신뢰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150) 도의적 죄책감은 수치심에 비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도의적 죄책감은 보상이 가능하고 한 사람의 내면의 총체성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도의적 죄책감은 자신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고양된 정서이다. 도덕성은 금지시키고 숨 막히는 규율을 들이대며 완벽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해 주면서 그래도 세상에는 용서라는 자비심이 있다고 말해 주어 아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치 있고 관심 어린 사랑을 받고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는 자신의 인간적 결함이 세상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결함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늘 착하게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부러움과 질투 같은 감정을 가질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151) 실제로 모든 사람이 매순간 공감적 고통과 이타적 행동을 경험해야 한다면, 정작 자신의 정서적, 인지적, 신체적 행복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리적 구조는 공감 각성에 최소의 발단과 최대의 한계를 설정해 놓고 있다. (156) 마지막으로 가장 성숙한 형태의 공감적 반응은 전체 집단이나 심지어 동물 전체의 고통을 자신의 고민으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다. (159) 이타심을 공감적이라고 보는 가설. 도와주는 사람이 느끼는 기쁨을 목표가 아닌 결과로 본다. (166)
 
◆ 단상
공감은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본능이다. 공감받지 못한다는 것은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가장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모욕 당하고 따돌림 당하면서 자란 아이들은 공감과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화를 내는 것만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행동 하나 하나, 말 하나 하나가 나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모욕을 줄 수 있다면, 나는 누군가의 공감능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공감의 시대 - 5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진정한 자유는 불굴의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숨김없이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실체론 옹호자들은 말한다. (198)
 
◆ 발췌
아퀴나스는 우주가 질서정연하며, 이성 덕분에 인간은 창조된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동조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이 세상을 질서 있고 합리적인 우주로 창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아퀴나스의 주장이다. (173) 데카르트가 꿈꾼 대로 신의 창조를 지배하는 기계적 움직임을 설명 할 수 있는 수학적 방법을 발견하는 일은 중세 최후의 위대한 연금술사이면서 신앙심 깊은 인물이었던 아이작 뉴턴의 손에 넘겨졌다. (176) 신앙적 인식과 합리적 인식은 둘 다 존재에 대해 비실체적 접근을 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공감이란 영역을 개발하여 성숙한 사회적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느낌과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178) 공감의 인식의 틀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신앙과 이성이 갖는 주요 특징들의 의미를 다시 자리매김해 주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이 실체적 경험,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고 전제하면서, 그런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공감 능력, 즉 다른 사람이 자신인 것처럼 그의 마음을 읽고 반응하는 능력은 인간이 세계에 참여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고, 언어를 발전시키고, 설득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적이 되고, 문화적 설화를 지어내고, 현실과 존재를 정의하는 방법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179) 우연히 창문을 내다보며 사람들이 광장을 오가는 것을 본다면 나는 당연히 사람들 그 자체를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는 것이 과연 자동 인형에 씌운 모자와 코트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일까? 나는 그들이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내가 내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은 실제로 내 정신에 있는 판단의 기능이 단독으로 이해한 것이다. (180) 우리 존재의 진정한 육체성을 억누르고 세계와 우리를 진정한 물리적 방법으로 묶어주는 감정을 솎아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즉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핵심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183) 존재한다는 것은 교류한다는 뜻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위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면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그는 전적으로 항상 주변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 (185) 그들은 정신생활이 예외없이 관계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알고, 네가 알고, 네가 안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정신 이론의 진정한 개념이며 정신생활은 바로 이런 개념을 기초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186) 칸트의 희망과는 달리 현실세계에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심지어 우리의 몸도 변한다. 우리의 진정한 육체성은 영원히 변하는 것이다. 우리가 육체적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계와 끊임없이 주고 받는 활동의 한 가지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각자는 엔트로피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확대된 존재다. (188) 경험은 실체적이고 신체적이지만,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다른 존재와 함께 나누는 ‘교류’는 비물질적 성격을 띠며 저장된 기억의 일부가 되어 우리 각자만의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구성한다. (189)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에서 나는 참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로 대전환하면서 공감은 인간 역사의 중심에 놓인다. (192) 우리가 참여적 세계에 살고 몸의 경험이 다른 사람과의 끊임없는 교분의 경험이라면, 공감은 서로의 삶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공감은 또한 우리 자신의 공동의 현실을 만드는 수단이다. (192) 자유에 대한 실체적 접근은 이들과는 상반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자유는 인생의 충만한 잠재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것이고, 충만한 삶이란 우정과 애정과 소속감의 삶이며, 보다 깊고 보다 의미 있는 개인적 경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가능성을 찾는 삶이다. 공감적 기회를 보장해 주고, 격려하는 사회에서 양육되고 성장할 때 인간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197) 평생을 돌이켜 보아도 가장 오래 남는 기억과 경험은 공감을 나누었던 순간 뿐이다. (198) 진정한 자유는 불굴의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숨김없이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실체론 옹호자들은 말한다. (198) 취약하다는 것은 같은 인간을 믿겠다는 것이다. (199) 넬슨 만델라. 그는 그들을 개인적 고통을 안고 있는 하나의 고유한 개인으로 바라보았고 다정한 태도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굴의 의지와 고고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따뜻한 인간이 되기를 택했다. (199)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외로운 늑대 같은 확고 부동한 인간. 그들은 인간을 가장 사회적인 동물로 만들어 주는 감각적 통로를 닫아 놓은 사람들이었다. (200) 다른 사람과 공감할 때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를 자신의 것처럼 동일시하는 바로 그런 행동이 평등 의식의 궁극적 표현이다. (201)
 
◆ 단상
감정을 완벽하게 다스릴 줄 아는 외로운 늑대는 결국 외롭게 죽을 것이다.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 그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용감하고 강건한 행동이다. 솔직하게 살자. 내 부족함, 내 나약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삶을 살자. 공감의 시작은 솔직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공감의 시대 - 6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삶을 긍정한다. (210)
 
◆ 발췌
보다 성숙한 공감은 자신과 다른 자신과 다른 사람의 죽음을 인식하면서 비로소 나타난다. (204)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인생을 예찬하는 것이다. 공감의 순간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밀도 높은 생생한 경험이다. (206)능률에 대한 근대의 병적인 집착은 대부분 밑바탕에 깔린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고, 시간을 아껴 현세에서의 수명을 꾸준히 미래로 확대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비롯되었다. 지나치게 능률적인 사람은 늘 두려움의 냄새를 맡는다. 그런 사람과 가까워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209)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삶을 긍정한다. (210) 지금 여기에 발을 깊이 들여 놓고 실체적이고 충만한 삶을 산다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먼 미래의 완벽함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꿈은 꾸지 않게 된다. (211) 톨스토이. 무언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면 전혀 사는 것이 아니다. (213) 공감의 순간은 거리낌 없는 참여도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감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에 완전히 빠져 그 느낌에 압도된다면 자아의식을 잃기 때문에 그들의 느낌을 우리의 느낌으로 상상할 수 없다. 공감은 미묘한 균형 감각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의 곤경을 자신의 일처럼 체험해야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독립적 존재를 만들어 주는 자아의 능력까지 버려서는 안된다. (217) 공감의식은 외적으로 주어진 도덕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욱적인 환경에 의존한다. 도덕적 감수성은 유아 시절부터 양육해 주는 부모, 가족, 이웃의 환경에 얼마나 밀접하게 소속되는가에 따라 개발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221) 인간의 성숙한 공감적 잠재력은 학습하고 실천하고 유익한 환경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221) 법과 사회 정책에 담겨 있는 도덕률은 지침과 기준을 배울 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 선한 것은 처벌이 두렵거나 보상을 바라고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명령이나 약속에 의해 도덕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곤경을 나의 곤경으로 느낌으로써 도덕적 행동을 실체화한다. 진정으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것이고 따라서 실체적 경험 속에서 도덕적으로 적절하게 되는 것이다. (222)
 
◆ 단상
어제 직장 동료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놀랐고 가슴이 아팠다. 그 직장 동료는 나와 동갑내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여동생이라면 나이가 기껏 40대 초반일 것이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일상 속에 있다. 그저 무시할 뿐, 아닌 척, 모른 척하고 살아갈 뿐이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했다.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 때,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서로 공감할 수 있다. ‘내일 죽음이 내게로 온다면?’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공감의 시대 - 7일차 

◆ 오늘의 한 문장
동정심은 인간에게 본래적이다. (271)
 
◆ 발췌
왕이 다시 묻는다. “빛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냐?” 뱀이 대답한다. “대화이죠” (230)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서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동물들의 재주를 그대로 따라했다. (235) 구두문화는 참여적이다. 사회적인 유대감이 개인의 구분보다 더 중요하다. (255)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지만 그래도 그에게서 살려는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264)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이고 나그네 신세였다. (268) 지금이라도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갑자기 보게 되면 예외없이 소스라치면서 다급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이런 경우에서 보듯 동정심은 인간에게 본래적이다. (271) 동정은 다른 사람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다. (274)
 
◆ 단상
공감은 본래적이다. 인간은 동정하는 존재다. 더불어 역사는 공감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청각에서 시각으로, 다신에서 유일신으로의 변화는 집단에서 개인을 떼어놨고 공감능력을 키웠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공감능력은 어떻게 변할까? 식당에서 대화 없이 고개 숙여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세상. 사람과의 대화보다 기계와의 대화가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를 미래. 우리의 공감능력은 진화할것인가? 아니면 퇴보할 것인가?
 

공감의 시대 - 8일차 

◆ 오늘의 한 문장
혈연이나 지연이 아닌 신학적 믿음으로 하나가 된 새로운 종류의 가족이었다. (291)
 
◆ 발췌
예수, 그의 권세는 야수 같은 힘을 휘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나약함을 드러내는 가운데 나왔다. (292) 차별화되고 소외된 도시 환경에서 사랑과 정과 교분을 바라는 그들의 개인적, 실존적 탐구는 예수에게서 공감적인 동지애를 발견됐다. (294) 로마 제국은 동쪽에 있는 관개문명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더욱 증가한 엔트로피의 피해와 거대한 공감의 물결이 정면 충돌하는 과정에서 종국을 맞이했다. (312) 로마제국의 흥망은 새로운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체제가 만든 시너지 효과가 보다 복잡한 사회 제도를 조장하고 그 제도가 인간 의식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에서 반복되는 테마의 고전적 사례일 뿐이다. (319) 겉으로 드러난 엔트로피가 그 사회의 인프라를 관통하는 에너지 흐름의 수치를 초과하게 될 때 그 문명은 쇠퇴하거나 사멸하고 만다. (319)
 
◆ 단상
로마에 패배한 지역에서 끌려온 노예가 되어본다. 각박한 노예생활 속에서 고향의 그리움은 얼마나 컸을까? 애틋한 정이 얼마나 고팠을까? 이 때 예수가 나 같은 비천한 노예에게 손을 내민다면?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준다면? 그 손 잡지 않았을까?
 

공감의 시대 - 9일차 

◆ 오늘의 한 문장
몸이 맥을 못추면 마찬가지로 정신도 활기를 잃는다. (342)
 
◆ 발췌
봉건사회에는 오로지 세 가지 계급만 존재했다. 통치하는 자, 기도하는 자, 싸우는 자. (322)(332)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은 읽는 사회는 본질적으로 듣는 문화보다 더 원자적이고 개인적이라고 말한다. (335) 몸이 맥을 못추면 마찬가지로 정신도 활기를 잃는다. 그럴 땐 특히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 코감기에도 꼼짝 못한다. (342) 공감은 전적으로 육체성을 입은 채 노래하는 삶의 예찬이다. (343) 다른 사람이 될 자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의 곤경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하고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다. (346) 부모를 사랑하고 섬기고 존경하고 복종해야 할 의무는 원래 부모의 사랑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354) 가까운 사람과 마음 놓고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다. (355)
 
◆ 단상
현재의 인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은 인쇄혁명임을 이해하게 된다. 유럽에 의자가 근대의 자율적 개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몸과 정신은 한 줄기라고 믿는다. 몸을 떼어놓고 정신을 이해할 수는 없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따라 아플 수 밖에 없다. 몸이 먼저다고 믿는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 혼자 쓰는 방이 몇 백년 전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이 당연한 삶을 살고 있는 나, 얼마나 행복한가?
 

공감의 시대 - 10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알고 그래서 세상에 말을 거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시인이다. (388)
 
◆ 발췌
1798년 엄마들에게 내려진 지침을 보면 교육의 첫째 목적은 아이에게 사랑을 심어 주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가 자신감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넓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칭찬이다.(362) 피에몬테의 수상 마시모 다젤리오는 186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후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는 이탈리아 사람을 만들 차례다.” (369) 시민은 누구인가? 공동의 생활 경험을 갖고 집단적 과거와 미래의 운명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375) 인간의 본성은 신이나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고 자신이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해 주어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삶과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꾸준한 진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378) 우리에 앞서 자신의 삶에 정체성을 밝히려 애쓴 위대한 사상가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했다. (378) 개인사도 하나로 모으면 결국 우리 인간의 집단적 역사가 된다. (379) 역사는 꾸준히 변하는 환경적 조건과 사회적 맥락에서 교차하는 우연한 만남, 우연한 환경, 그리고 개인의 특이성이 모여 만들어진 개인적 사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거의 집착에 가까우리만치 사람들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람들과 끈끈한 우애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남달랐다는 사실이다. (384) 우리 주변을 채워주는 특정한 관계와 만남을 통해 삶을 꾸려 간다는 사실이 우리를 고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385)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알고 그래서 세상에 말을 거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시인이다. (388) 인간은 그들 자신의 의식과 내면의 대화에 열중하고 집단적 의식과 사회적 대화를 나눔으로써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데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 했다. (396)
 
◆ 단상
책의 절반이 끝났다. :) 나의 역사가 우리 집단의 역사가 된다. 나의 삶, 당신의 삶, 개개인의 삶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 내 삶이 역사의 일부임을 기억하자. 내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이 장에서 다룬 많은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관계’와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 (리프킨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은 것인가?) 루소, 괴테, 도스토예프스키, 마리안! 소설에 빠질수록 공감능력은 향상될 것이다. 이번 주 리더스클럽 책 ‘위대한 개츠비’에 푹 빠져보자. ‘이상을 위해 인생을 바칠 수 있는가?’
 

공감의 시대 - 11일차

◆ 오늘의 한 문장
근대 공교육을 통해 국가의 교육자들이 제시하는 목표는 막 발흥하기 시작한 국가 경제를 끌고 나아갈 ‘생산적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421)
 
◆ 발췌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 모든 개념은 개인이 기준점이라는 시각을 당연시했다. (398) 근대의 중요한 의문은 느낌과 생각.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적절한가 하는 문제였다. (398) 프랑스 혁명, 하나의 우산 아래에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수용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혁명은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408) 새로운 생산력은 새로운 번영을 가져오고 있었다. (418) 신문, 잡지, 팸플릿, 책 등 인쇄물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글을 배우는 부르주아와 노동 계급이 더 많아졌다. (420) 사회가 훨씬 더 합리화되고 완전해질 수록 개인은 한층 더 세분화되었다. (421)
 
◆ 단상
추석휴가가 훌쩍 지나버렸다. 이번 휴가도 역시 쉬지 못하고 일했다. 명절 휴가 때 하는 일은 항상 하기 싫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 가슴이 아프다. 나도 모르는 새, 난 공교육을 통해 생산적 시민으로 육성되었던 것일까? 아무리 아파도 개근해야 하는 줄 알았다. 모난 돌이 정 맞듯이 튀면 안되는줄 알았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인줄 알았다. 개인은 갈수록 세분화되는데, 사회는 ‘공리’를 위해 헌신하라고 강요한다. 앞으로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지! 다짐해본다.
 
 

공감의 시대 - 12일차 

◆ 오늘의 한 문장
동정심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도덕적 소질이다. (440)
 
◆ 발췌
낭만적 시대를 관통하는 전반적인 경향은 “공감의 세속화”였다. (425) 낭만주의는 세계를 유기적인 관계에서 바라보았고, 인간은 천성적으로 인정이 많고 사회적이라 믿었으며, 진보란 상상력을 풀어 헤치고 자기 만족과 공동체 의식을 배양하는 인간의 창조력이라고 정의했다. (425) 낭만주의자들은 깊은 자연 속에서 인간을 부각시키기보다 자연에 초자연적 성격을 부여하면서 자연 자체를 부각했다. (426) 낭만주의자들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신성한 상호 연관성에서 우주의 통일성을 보았다. (431)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공감에 스며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공감은 죽음의 냄새에 이끌려 다른 사람의 삶을 예찬할 수 있는 것이다. (433) 끊임없이 무언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인생의 짧음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434) 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육체적인 약점이 있고,, 고통과 불편을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으며 무엇보다 본래의 성향은 선하다고 그들은 확신했다. (452)
 
◆ 단상
451페이지의 ‘산 채로 교수대에 늑골이 걸린 흑인’ 그림을 보자, 그림 속 흑인의 발버둥치는 고통이 내 속으로 베어 들어왔다. 동점심이 인간의 본성의 한 가운데 놓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낭만주의자들의 생각처럼 모든 존재들이 연결되고, 묶여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과 계몽철학자들의 사상을 넘어 낭만주의가 태동한것은 인간 본성을 향한 당연한 변화가 아니었을까!
 

공감의 시대 - 13일차 

◆ 오늘의 한 문장
기술적 변화와 문화적 변화가 처음부터 공생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초보적인 심리학적 의식을 낳았고, 그것이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479)
 
◆ 발췌
석유로 가동하는 내연기관과 함께 전기가 발명되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너지 체계가 탄생했다. 인간의 인식이 또 한 번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바야흐로 세계는 심리학적 의식의 시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462) 심리학적 의식은 1800년대 초에 전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463) 근대의 기업 관료주의는 화석연료 시대의 산물이었다. (474) 새로운 조명으로 산업체의 근무 시간이 늘어났고, 가족들은 해가 떨어진 뒤에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었다. (474) 자동차는 전화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 놓으면서 관계의 폭을 넓혀주었다. (478) 개인사의 고유한 본성을 강조하고, 현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관용을 길렀다. (480) 원근법은 천상을 향했던 인간의 시선을 주체와 객체가 상주하는 속세의 선적 지평으로 돌려놓았다. 시선은 더 이상 저 위의 세상으로 올라가는 환희에 찬 기대가 아니라 밑에 있는 객관적 세계의 편견 없는 질서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482) 신기술은 또한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혔고, 더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만나게 해 주었으며, 전에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규모로 광범위한 관계를 맺게 해 주었다. (488)
 
◆ 단상
기술이 의식을 변화시킨다. 전기와 전화, 그리고 자동차가 심리학적 의식을 변화시켰고 공감을 확대시켰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AI와 로봇, 사물들의 연결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식의 변화를 만들어낼까? 그림의 원근법이 천상을 향한 시선에서 인간의 시선으로 내려놓았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것이 공감의 시작이다.
 

공감의 시대 - 14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창의성은 고독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506)
 
◆ 발췌
청소년은 정체성을 만들려면 사회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찾기 위해 부모의 현실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고, 당연시 되는 기존의 권위에 어느 정도 의문을 가져야 한다. (491) 개성의 등장은 사람들의 의식이 갑작스레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고매함보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것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493) 자존감 = 성공 / 허세, 분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분모가 줄어들어 분수가 커지는 쪽이 좋다. 허세를 포기하는 것은 허세를 만족시키는 것 만큼이나 당행스러운 축복이다. (499) 하나의 역할은 언제나 공개적 표현이며, 그 역할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행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만 의미와 타당성을 가진다. (510)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의도성을 가지고 사는 존재로 이해한다. 즉 목적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다. 목적은 인생을 보다 더 큰 맥락에서 해석함으로써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518) 다른 사람의 처지와 정서적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친밀감을 느끼고 돌봐주고 인정해 줄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수단이다. (521) 개인은 소중하고 고유하고 죽을 수 밖에 없고 궁극적인 가치를 가진 존재다. (523)
 
◆ 단상
나보다 타자를 위하는 마음을 가질 때 창의성은 더욱 쉽게 발현된다. 사실이다. (내가 소유하기 위해 돈을 쓸 때 보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즐거움이 훨씬 더 오래 가는 것처럼!) 우리는 역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공감의 본능을 가진 동물이 맞다. 집단치료나 자조모임의 효과가 큰 것 역시 이유가 있었다. 힘들거나 지칠 때 홀로 동떨어지려 하지 말자. 그럴 때 일수록 내 마음을 드러낼 수 있고, 들어 줄 수 있는,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자.
 

공감의 시대 - 15일차

◆ 오늘의 한 문장
개인의 안정성이 공감을 증가시킨다. (563)
 
◆ 발췌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로 스며들 때, 자신의 모습의 절반은 잊히고 나머지 절반은 상대방의 문화를 바꾸어 놓는다. (544) 존재 의식은 일정한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달린 문제가 되었다. (548)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은 19세기 낭만주의 정신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 (552) 한 사람을 깊이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와 그 사람의 인생을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안다는 것이다. 즉 그 사람만의 스토리를 안다는 것이다. (557) 자의식이 분명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고, 사람들을 신뢰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훨씬 너그러워질 수 있다.(563) 자신의 존재에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 것이고, 외부의 존재를 두렵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563)
 
◆ 단상
공감하기 위해선 먼저 내 존재의 가치를 키워야 한다. 내가 안정되지 못하고 생존에만 우선한다면, 타자와 공감은 후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산업화, 도시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국제적 이주, 세계 여행로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동인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전 다시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면. 민족적으로 내면에 깊게 뿌리 박힌 원한 관계에서, 과연 공감은 가능할 수 있을까? 어렵지 않을까?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공감의 시대 - 16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접촉하고 동물을 돌보는 일을 일부나마 책임졌던 아이가 친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결론 지었다. (588)
 
◆ 발췌
인생의 의미나 목적에 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 편인가? (576)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종교적 편견과 독선적인 교리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인생의 의미와 존재의 목적을 찾는 타인의 존재론적 탐구에 공감하는 경향이 강하다. (577) 인종 구분은 근본적인 구분이다. 그러나 가족에 타인이 있다면 더 이상 그를 타인으로 생각하기는 힘들 것이다. (582) 인간적 공감은 이제 인류를 넘어 다른 생물에게까지 확장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583) 『연결고리』 세계 어떤 두 사람을 무작위로 설정해도 아는 사람 다섯 명 정도만 거치면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다. (590)
 
◆ 단상
기술이 진보할수록 인류는 더 빨리 섞이게 되고 더 쉬운 공감의 환경에 놓이게 된다. 연결고리가 확장되고 있다. 다른 인종과의 결혼의 빈도가 올라갈수록, ‘우리’라는 테두리가 넓어지고 있다. 이제 이 테두리는 인간을 넘어 동물과 식물로 확장되고 있다. 둘째 아들이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귀여운 반려견을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키워야 하나? (공감능력을 위해서)
 

공감의 시대 - 17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어떻게 하면 가진 자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갖지 못한 자는 환경과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여 함께 안락의 문지방에 도달할 수 있는가? (636)
 
◆ 발췌
지구 온난화는 산업혁명이 치른 엔트로피의 수치를 의미한다. (597) 몇 십년 후에 지구의 온도가 임계점에 도달하여 온도 상승률이 급격히 높아지게 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604) 변화는 온실가스 농도에 비례하는 점진적 단계를 밟지 않고, 아대륙이나 보다 더 큰 지역에 영향을 주는 갑작스럽고 확고한 체제 변환을 통해 일어날 것이다. (607) 인간의 진보가 공감의 감수성을 부양하기 위해 엔트로피의 지속적인 증가를 요구했다면, 결국 진보를 향한 경쟁은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616) 이기심이 늘면 이타심은 줄어들었다. (622) 돈이 부유한 사람에게서 가난한 사람으로 옮겨 가면,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 잃는 것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평균 행복은 올라간다. (625)
 
◆ 단상
공감이 진화할수록 엔트로피는 늘어난다. 반면 엔트로피의 증가는 인류의 멸종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기후변화가 어느 임계점을 초과하는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저자의 말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핵과 유전자 조작 무기마저 인류의 절멸을 노리는 듯하다. 30억명 이상의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엔트로피는 증가해야만 할까? 이 장에서 언급한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부의 나눔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기술 진보는 부를 가진자에게만 더욱 선물한다. 미래의 95% 이상의 인간은 무용적 존재가 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일본 핵오염수 방류와 한국과 중국의 반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이란과 미국의 대척, 이처럼 수많은 지정학적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에서, 어떤 해결책이 현실적인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까? 자꾸만 암울하고 부정적인 미래가 그려진다.
 

공감의 시대 - 18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직장에서의 생산성은 정서적으로 동료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677)
 
◆ 발췌
시스코는 자기가 아는 것을 독차지 하려는 발상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려 한다. (659) 즉 하나의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사람과 협력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660) 정보가 거의 동시적이고 교환되는 세상에서, 시간은 가장 희귀하고 소중한 자원이 된다. (668)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나 자산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개념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661)(677)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어 열성적으로 참여하면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과 친밀감이라는 보답을 돌려받는다. (681) 경쟁보다 협동이 대세를 이루고 접속권이 재산권만큼이나 중요해지고 삶의 질이 개인의 재정적 성공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두드러지게 생각되는 분산 자본주의 경제가 자리를 잡으면 공감적 감수성도 번영할 여지를 마련할 것이다. (685)
 
◆ 단상
엔트로피의 확장을 막고 공감의 지속을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분산’ 모델을 제시한다. 에너지를 분산하고 소유를 분산하고 경제를 분산하는 모델은 이미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있는 것들이다. (녹색에너지, 오픈 소스 플랫폼들, 구독서비스들 등등),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 전체의 삶의 질에 똑같은 비중을 둔다는 ‘유로피언 드림’.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일잘러’는 동료와 잘 어울리면서, 동료를 이해하면서, 좋은 결과를 함께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 내 곁에 있는 직장 동료의 마음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겠다.
 

공감의 시대 - 19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우리가 공감 충동이 성숙할 수 있도록 ‘나’라고 하는 확고한 자아의식을 보유할 때만 바랄 수 있는 일이다. (711)
 
◆ 발췌
20세기 내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중으로 객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는 모든 사람이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그 밖의 생물권 덕분에 무대 위에 올라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688) 복잡하고 상호 연결적이고 속도가 빠른 문명에서 연극적 의식은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694) 자아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나온 일종의 허구의 짜 맞춘 합의에 의한 유효성을 갖는 자질이다. (695) 어떤 의미에서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가면, 즉 페르소나를 취하는 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의 한 가지 면에 대한 진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701) 모든 느낌에는 사연이 있다. (702)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다. 셰익스피어가 썼다. (710) 현실적 자아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자아이고, 이상적 자아는 우리가 열망하는 자아인 반면,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실제로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아다. (715) 인터넷은 공유와 협동의 도구이지만, 한편으로는 끝도 없는 과시와 자아도취의 광장도 되어준다. (718)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역설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인터넷 망은 인류에게 무한한 지식과 소통의 통로를 제공하지만, 인터넷이란 매체의 속성과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 때문에 이해와 의미와 공감적 유대감을 높여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현저하게 줄일지도 모른다. (729)
 
◆ 단상
공감을 위해서는 연기도 필요하다. 다른 누군가가 되는 순간 공감의 속도는 진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기를 하더라도 진짜 자기 모습 만큼은지킬줄 알아야 한다. (작가는 진정한 자아라고 표현했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진 우리들의 모습은 지금 시대에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역할극에서 벗어나 현실적 자아의 페르소나를 벗었을 때의 진정한 자기 모습만은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 자아를 잃어버리면 진짜 ‘나’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없는데 누군가에게 공감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연결되는 인터넷 때문에 공감능력은 증대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인터넷이 공감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어휘의 한계가 관계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공감의 시대 - 20일차 

◆ 오늘의 한 문장
우리는 과연 제때에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761)
 
◆ 발췌
새로운 분산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분산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인간과 인간을 이어 주고 있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왜 우리가 서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별다른 이유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734) 그 사람에 대한 의미를 얻어내려면 그가 속해 있는 환경과의 관계와 그가 공유하는 많은 관계를 이해할 때만 가능하다. (736) 이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즉 우리의 생활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른 동식물과 우리가 공생하는 생물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742) 사랑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그 학생은 잠깐 동안이지만 조금만 아기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경험했다. (745) 괴테의 과학적 방법론. 괴테는 진정한 통찰력은 초연한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는 현상에 깊이 관여할 때 얻어진다고 주장했다. (751) 인간이 만들어낸 엔트로피의 수치가 지구를 감싸고 대량 전멸이라는 카드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760) 모두가 협력하여 생물권 전체와 집단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맺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 받을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물권 의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760)
 
◆ 단상
우리는 하나의 지구라는 유기체에서 사는, 하나의 생물권이라는 의식을 가져야만, 지구인의 절멸을 향해 폭주하고 있는 엔트로피를 멈춰 세울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하나의 생물권 의식’ 다소 이상적이고 모호하다. (씻지 않고 수영장에 들어오는 동남아시안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처럼 ‘과연 지구인이 절멸을 피하고 공감을 지속해갈 수 있을까? ‘라는 문제의식을 세상에 이 두꺼운 책으로 던진 노력은 지금 시대의 모든 지식인이 배워야 할 자세인 듯하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두꺼운 책 ‘함께 읽기’를 마쳤다. 밑줄 긋고, 생각해보고, 글로 옮기고, 함께 공유하며 한 달을 보낸 이 시간 . 값진 시간이었다. 함께 읽기를 이끌어주신 김광휘 의정관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눠주신 16분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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